1952 오슬로 동계올림픽
제6회 동계올림픽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1952년 2월 14일 ~ 2월 25일까지 개최되었다, 5년 전 생-모리츠에서처럼 시그프리드 에드스트룀이 IOC 위원장, 아르망 마사르가 프랑스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30개국에서 694명(남 585, 여 109)이 참가했다. 대회 개회선언은 랑힐 공주가 동생 하롤드를 동반하여 비슬레트 경기장에서 함께 했고, 선서는 스키선수인 토르비에른 팔캉에르(Torbjom Falkanger)가 했다. 12일간의 경기를 통해 4개 스포츠 22개 종목의 경기가 치러졌다. 53,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7개의 메달이 수여되었다. 동계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스칸디나비아 나라인 노르웨이가 대회를 개최했으며, 1948년 대회에 배제되었던 독일과 일본이 경기에 출전하도록 초대되었다. 30개 나라가 오슬로에 선수단을 보냄으로써 이번 대회는 참가자 수에서 새로운 기록을 수립했다. 포르투갈과 뉴질랜드가 동계올림픽경기에 처음 출전했다.
스켈레톤이 최종적으로 제외됨으로써 오직 4가지 스포츠종목이 채택되었다. 반면, 스칸디나비아에서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경기 하나가 시범경기로서 노르웨이 사람들에 의해 선을 보였다. 집단 경기인 아이스하키에 비교되는 ‘밴디’라는 시합이었다. 경기 내내, 노르딕스키는 주최국과 그 나라 선수들의 명예를 높였고, 구름관중이 이 경기를 따라 움직였다. 알파인스키 경기가 수도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도록 한 것이 유일한 결점이었다.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계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 선수인 스테인 에릭센(Stein Eriksen)이 대회전경기에서 우승하는 기량을 지켜볼 수 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회전경기에서도 오스트리아 선수 오트마르 슈나이더(Othmar Schneider)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여 또 다시 이변을 연출할 뻔했다. 이번에는 경기가 벌이진 곳이 오슬로 가까운 홀멘콜렌이었다.
오슬로가 동계올림픽 개최도시가 됨으로써 노르웨이는 노르딕스키의 역사가 다시 활기를 찾도록 했다. 거기에다 동계올림픽에 사용된 성화가 새로운 상징성을 띠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헤라신전 앞에 있는 올림피아에서 성화 채화하는 대신 텔레마르크 지방, 보다 정확히 말해서 모르게달 마을에 있는 손레 노르헤임의 생가에서 성화 채화했다. 이 선수는 “나는 인간”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대단한 점프선수로서 1870년대에 30.5m의 점프를 기록했다. 200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오슬로를 향해 올림픽성화를 운송하는 일은 여러 명의 스키선수들 몫이었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마지막 주자는 에이길 난센이었다. 그는 1866년 5명의 동료들과 함께 그린란드를 횡단하는 데 성공한 유명한 해양 탐험가인 프리티오프 난센의 손자다. 검은색 옷차림에 오른손에는 스틱, 왼손에는 성화 횃불을 든 에이길 난센이 비슬레트 기장으로 들어서서 성화대로 다가가 불을 붙였다. 노르웨이 노르딕스키의 역사에 바쳐진 이 성화 점화의 감동은 대회 내내 이어졌다. 42년이 지난 다음, 스키에 대한 이런 사랑과 잔치 분위기가 또 다시 생겨나게 될 것이다.
미국선수 리차드 버튼은 남자 피겨스케이팅에서 연속 두 번째 금메달을 차지하여 오스트리아 선수 카를 셰퍼가 세운 대기록을 되풀이했다. “딕”이라고 불리던 리차드 버튼은 1948년 18살 나이에 처음 금메달을 따면서 피겨스케이팅계에 파문을 던졌다. 그의 연기는 관객을 열광시켰다. 우아함과 안정감이 돋보인 스케이팅이었다. 그는 점프를 계속했지만 어렵게 한다거나 위험을 감수한다는 인상은 갖게 하지 않았다. 유연함과 강함을 동시에 연결할 줄 알았다. 그의 코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동계올림픽 초창기에 명성을 날린 프랑스 챔피언 피에르 브뤼네였다.
2월 21일 오슬로에 있는 경기장에서 펼쳐진 그의 연기는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9명의 심판은 만장일치로 버튼에게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오스트리아 선수 자이프트(Seibt)가 2위였으며, 1948년에 6위에 그쳤던 그로간(Grogan) 이 3위를 차지했다. 4위를 기록한 18세의 헤이스 앨런 젠킨스(Hayes Alan Jenkins)는 4년이 지난 뒤 코르티나담페초 대회에서 남자 피겨스케이팅 우승을 차지한다. 오슬로대회가 끝난 다음 버튼은 올림픽 무대를 떠나 프로선수가 되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피겨스케이팅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시기는 1948년에서 1952년 사이였는데, 이 기간 동안 그는 다섯 번 세계챔피언 타이틀과 연속 2번 올림픽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프리스케이팅에 최초로 트리플점프를 포함시켜 연기했다.
1948년 대회의 빙속경기는 4경기에서 3개의 우승을 차지한 노르웨이의 축제였다. 1952년 대회의 빙속경기는 최고의 기록산실이라는 오슬로 빙상경기장에서 벌어졌고, 또 다시 노르웨이의 우위가 드러났다. 그들은 이 종목에서 수여되는 15개의 메달 가운데 금메달 3개를 포함하여 6개의 메달을 차지했다.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인 선수는 3개의 메달을 목에 건 30세의 얄마르 안데르센(Hjalmar Andersen)이었다. 2월 17일 1,500m 경기에서 그는 2분 20초 4/10을 기록하여 네덜란드 선수 빌렘 반데르 보르트(Willem van der Voort), 같은 노르웨이 출신 로알드 아스(Roald Aas)를 제치고 우승하며 시동을 걸었다. 5,000m 경기에서 안데르센은 8분 10초 6/10으로 우승했다. 10,000m 경기는 빙속경기의 전설로 남아있다. 물론 안데르센이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2위인 네덜란드선수보다는 25초, 3위인 스웨덴선수보다는 41초를 앞선 기록이었다. 2월 19일 저녁이 되어 이 노르웨이선수는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대회에서 같은 나라 출신의 이바르 발랑루가 이룬 성과(올림픽 신기록을 기록한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에 가까이 다가섰다. 안데르센이 3개의 올림픽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으로 노르웨이는 메달 사냥을 완료했고, 금 7개를 포함한 16개의 메달을 차지해 종합 1위를 유지했다.
이번 대회에 미국 버몬트주 러틀랜드 출신의 19세 안드레아 미드-로렌스(Andrea Mead-Lawrence)가 참가했다. 그녀는 알파인스키 선수인 로렌스와 얼마 전 결혼한 다음이었고, 이미 생모리츠 대회에 출전하여 회전경기에서 같은 나라 선수인 그레첸 프레이저(Gretchen Fraser)에 11초 차이로 8위를 기록했었다. 이번 6회 대회에서 IOC는 남녀 회전과 대회전 그리고 활강의 새로운 경기를 추가했다. 2월 14일, 안드레아는 2위인 오스트리아 선수 다그마르를 2초 차이로 앞서 결승선을 통과하여 생애 첫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롬 다그마르(Rom Dagmar)는 오스트리아에서 영화배우로도 잘 알려진 스키 선수였다. 안드레아는 알파인스키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최초의 여자선수가 되었다. 6일이 지난 다음, 회전경기가 오슬로에서 벌어졌고, 안드레아 미드-로렌스는 오스트리아의 롬 마그다르와 독일 부크너(Buchner)를 물리치고 두 번째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같은 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목에 거는 최초의 미국 여자선수가 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회전과 대회전에서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1956년에는 세 아이를 둔 엄마가 되어 그녀로서는 마지막 올림픽대회에 참가하여 동메달보다 1/10초가 늦어 스위스선수인 마들렌 베르토(Madeleine Berthod)와 동률로 4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노르웨이는 금 7. 은 3. 동 6 모두 16개의 메달을 수확해 통산 다섯 번째로 종합성적 1위를 유지했다. 2위는 미국(11 메달), 3위는 핀란드(9 메달)가 차지했다. 지난 대회인 생-모리츠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포함한 10개의 메달로 2위를 차지했던 스웨덴이 단지 4개의 동메달을 따고 10위로 내려앉은 것이 이번 대회의 큰 이변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치 관례가 된 것처럼, 캐나다는 아이스하키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통산 6번 대회에서 5번 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홀멘콜렌에서 벌어진 점프경기였다. 노르웨이의 하콘 국왕을 포함해서 15만 관중이 버그만(Bergmann)과 팔캉에르(Falkanger)의 우승을 지켜보았다. 둘 모두 노르웨이선수이다. 이탈리아 대표에 속한 유명한 알파인스키 선수인 콜로 제노(Colo Zeno)가 이번 대회의 스타로 떠올랐다. 32세의 콜로 제노는 활강 올림픽 챔피언 타이틀을 목에 걸었다. 회전과 대회전에서 각각 4위를 차지하여 불운했지만, 마침내 목표를 이룬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1950년에서 1952년 사이에 활강과 대회전에서 3개의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여 알파인스키의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아이스하키 이야기를 할 때면 즉시 캐나다를 떠올리듯이, 노르딕스키에 대해서는 핀란드와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번에도 역시 이 세 나라가 시상대를 차지했다. 이번에는 여자 10km 경기가 더해져서, 핀란드선수 3명이 시상대에 올랐지만,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봅슬레이경기가 끝난 다음, 국제봅슬레이연맹은 IOC와 합의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후로 봅슬레이팀 참가자들의 체중과 봅의 무게 한도가 정해졌다.
2인조 봅슬레이: 200kg 그리고 165kg
4인조 봅슬레이: 400kg 그리고 230kg
활강과 대회전 경기가 수도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노레프옐레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선수와 관중이 이동하는 데에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이번 대회는 전국적인 큰 잔치가 벌어진 격이었다. 노르웨이 나라 전체가 모든 경기에 큰 관심을 표시했고, 행사자체가 대중적 인기와 스포츠 기록 측면에서 대단한성공을 거두었다. 42년이 지난 뒤에 노르웨이는 또 다시 동계올림픽대회 개최지로 선정되어 제17회 대회를 주최하게 된다.
한편, 스포츠 소비자들의 TV중계시청의 선택기준은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습니다.해설자의 데이터에 기반한 정확한 해석은 기본이고, 중계품질과 다양한 각도에서의 송출장면, 선수 개개인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내어 송출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내는 경기의 명장면은 스포츠 소비자들의 인터넷 접속량을 증가 시키고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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