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오래된 골프 코스

근대 골프의 발상지 ‘ 머셀버러 ‘

까마귀 떼가 머셀버러 올드 코스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클럽하우스 건물 벽에는 이 마을에서 배출한 5명의 오픈 챔피어의 얼굴 부조가 있다.

러시모어에 있는 미국 대통령 조각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까마귀 울음 속에서 본 챔피언들의 인상을 강렬하다.

머셀은 홍합, 버러는 스코틀랜드 말로 마을 이라는 뜻이다. 머셀버러는 홍합마을 이라는 뜻이다.

이 곳의 올드 코스는 파 34에 2,874야드인 9홀 코스다.  경마장 안에 있고, 시가 운영하는 퍼블릭 코스이며,  그린피가 2만5천원 정도다.  언뜻 과거 서울 뚝섬 경마장에 있던 퍼블릭 골프장 비슷해 보이는데 절대 그렇지는 않다.

머셀버러는 골프의 가장 큰 문화재 중 하나다.  현존하며, 중단없이 골프가 행해진 가장 오래된 코스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1672년 이곳에서 존 플리스라는 변호사가 돈을 잃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해서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곳에서 3파운드 5실링을 잃었다고 한다.  통화가치를 생각해보면 당시 골프 내기 규모는 꽤 컸던거 같다.

이 기록은 현존하는 코스에서 구체적인 골퍼의 이름과 시간, 내기 액수까지 명시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물론 머셀버러에서는 이보다 훨씬 먼저 골프를 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오래 되기만 한 것도 아니다.  1874년부터 1889년까지 디 오픈 챔피언십을 5차례 개최한 곳이다.  세인트 앤드루스와 더불어 골프 코스의 메카를 다투었던 곳이기도 하다.

한때 골프 클럽60개가 이곳을 홈코스로 썼다.  5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크스는 만만치 않다.  240야드 짜리 파3홀도 있고,  430야드 파 4홀도 있다.

그린은 굴곡이 심하고 러프는 길다.

히코리 오픈 챔피언십이 열리고 있었다.  히코리는 19세기 후반 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골프 클럽의 샤프트로 쓰이던 나무 이름이다. 싸고 강하며 탄성이 좋다.

프로선수들이 무릎 10센티미터 아래까지 내려오는 니커보커 플러스포 바지에 긴 스타킹 등 예전의 골프 복장을 차려 입고 히코리 클럽으로 대회를 치렀다.

히코리 골프대회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오픈 경기이다.

골프의 유혹을 이긴 군 지도자는 많지 않다.  스코틀랜드 왕당파를 제압하러 머셀버러에 주둔할 때 골프를 하자는 제의를 뿌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한 올리버 크롬웰을 제외하곤 다들 골프에 패했다.

1641년 영국의 찰스 1세는 에든버러의 리스 링크스에서 골프를 하던중 아일랜드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즉각 조치하지 않고 골프를 끝까지 마쳤다.

그는 두 차례의 내전에서 패했고 8년후 목이 잘렸다.

메리 여왕이 남편이 살해된 며칠 수 골프를 즐긴 코스도 머셀버러로 추정된다.  그 일 때문에 여왕은 남편 살해 혐의를 받고 잉글랜드로 망명했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다.

메리 여왕의 아들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겸하게 되어 런던으로 가던 중 골프를 친곳도 이 곳이다. 그는 그 정도로 골프광 이었다.

머셀버러에는 거대한 뿌리가 있다.  머셀버러의 땅을 파면 여기저기에서 나올 이 뿌리에는 절제라는 말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클럽 하우스에 조각되어 있는 챔피언들은 골프의 급성장기인 19세기 후반 골프 영웅들이다.  조각들 가운데 있는 수염이 치렁치렁한 사내가 초대 대회를 포함 4차례 오픈 챔피언에 오른 윌리파크다.

박세리, 박지은등 박(PARK,  박세리는 PAK으로 쓴다) 씨들은 한국 골프에 큰 획을 그었는데 스코들랜드의 PARK 가문도 대단하다. 클럽하우스 부조 주인공 5명중 3명이 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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