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선 사나이
2020년 KT 위즈의 조용호에게 플레이오프 4차전은 악목 그 자체였다.
많은 야구팬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2루 주자였던 그는 후속 타자의 타구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선취득점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팀이 2연패 뒤 2연승을 노리고 있던 시점이어서 전체 흐름을 뒤집을 뻔 했기에 더 뼈아픈 실수였다. 그날 KT는 패했고, 그대로 탈락했다.
누구라도 아쉬움이 남겠지만 특히 조용호에게는 잔인할 정도였다. 서른 한 살에 주전이 되어 팀 창단 첫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었는데 한 해의 마지막 경기가 가장 원치 않는 방식으로 기록 되었다.
이렇게 기억될 해는 아니었다.
조용호는 고등학교 때 부상으로 인해 프로 구단에 지명받지 못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도 발목 인대를 크게 다치는 바랍에 프로 진출의 기회를 또다시 놓치고 말았다.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자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야구선수의 길을 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우유와 피바배달을 하기도 했고, 중국 음식점 요리사 일을 배우기도 했다. 야구를 잊고 살 수밖에 없다고 행각했다.
그러나 소집해제를 앞두고 동네 아이들이 야구공을 던지며 노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야구에 대한 열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호는 대학 시절 은사를 통해 SK 와이번스 구단의 입단 테스트 기회를 얻었고 어렵사리 육성선수 신분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무명선수라는 말도 관분할 지경이었다. 창창한 고졸 선수들과 경쟁해 2017년 만 26세의 나이에 1군에 데뷔했다. 끔같은 하루였다.
그런데 그 정도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게 과오였을까 첫해 가능성을 보여 주었지만 프로 무대는 그 정도의 성과로 나이 많은 유망주에게 호락호락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꾸준히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조용호는 팀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잉여 자원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무상 트레이드였다. 원래 트레이드의 핵심은 주는 쪽과 받는 쪽 사이에서 행하는 저울질에 있다. 가치 있는 선수를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SK구단은 아무 대가 없이 조용호를 KT위즈로 보내 주었다. 당시만 해도 KT는 전형적인 약팀 이었고, 조용호 정도면 KT에서 출전 기회를 얻을 만한 선수라고 판단해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흔히 ‘길터주기 ‘ 트레이드 라고 불리는데 선수뿐 아니라 감독과 구단 관계자 모두가 선후배로 얽혀있는 한국 야구에서 종종 벌어지는 독특한 트레이드다.
KT위즈의 유니폼을 입은 조용호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타격 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가면서 짧게 밀어쳤고, 두번의 실수는 없다는 각오로 2020 개막 첫 달 4할의 타율을 기록하고 상대투수가 가장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까다로운 선수로 자리매김 했다.
현역 최다 타석 무홈런 조용호가 가진 특이한 기록이다 . 데뷔 후 무려 1600회 이상 타석에 들어서고도 홈런 기록이 하나도 없다. 무리하게 한방을 노리다가 잃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자신의 쓰임새를 한정한 결과이다.
2021년 생애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조용호는 주연은 아닐지 몰라도 필요할 때마다 몸을 날려 빈틈을 채우곤 했다
KT도 창단 첫 리그 1위에 올랐으며 한국 시리즈까지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1년전 눈물을 흘렸던 조용호도 2021년 진짜 우승 멤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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