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본즈는 왜 그때 삼진을 당했을까 ?

무관의 배리본즈

2002년 10월 2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월드시리즈 6차전 3승 2패로 우승에 한발 다가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이날도 5회까지 3대0으로 앞서고 있었다.

6회 초에는 당대 최고의 타자 배리본즈가 떠로르는 신예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배리 본즈는 7회 초에도 등장했는데 제프 켄트의 적시타로 5대0이 된 다음 이었다.  투아웃 주자 1루 상황에서 이번에는 바닥까지 떨어지는 변화구에 큰 스윙으로 허망하게 삼진을 당했다.

상관 없었다.  그는 이미 고의4사구 , 볼넷, 홈런으로 앞선 3타석에서 자신의 위엄을 한껏 과시한 뒤였다.  이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아웃 카운트 9개만 잡으면 뉴욕 자이언츠 시절 이후 58년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무엇보다 천하의 배리 본즈다 드디어 우승 반지를 획득하는 순간이라는 점이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7회 말 애너하임 스콧 스피지오의 3점 홈런, 8회말 대런 어스태드의 솔로포로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후 개럿 앤더슨의 안타를 처리하다 공을 두번 더듬고 미끄러지면서 휘청인 배리 본즈는 트로이 글로스의 2타점 2루타가 된 타구에 다시 공을 더듬으며 체면을 심하게 구겼다.

경기는 역전패로 끝났고 그 여파로 7차전까지 내주면서 평생 꿈꿔온 우승 반지는 눈앞에서 날아갔다.

당대 최고의 타자였던 마크 맥과이어나 새미소사와는 달리 섬세한 선구안과 경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까지 갖춘 배리 본즈는 2001년 전반기에만 39홈런을 터뜨려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울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제대로 찌른 랜디 존슨의 강속구도 여유 있게 밀어쳐 넘길 만큼의 경지에 올라섰고, 상대팀들은 고민 없이 고의사구를 택하곤 했다. 결국 73홈런 단일 시즌 최고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배리 본즈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목표였다. 그는 우승만 아니면 당장 은퇴해도 아쉬움이 없다고 했다.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은 물론이고 큰 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는 욕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다시 2002년 10월 26일 월드시리즈 6차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7회 5대0  샌프란시스코의 우승을 의심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불펜 투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그라운드의 어느 방향으로 뛰쳐나갈지 의논 중이었다.  7회 초 배리 본즈의 삼진도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우승 자축포를 터뜨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한 영웅의 스윙이었을 수도 있고,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 ‘퇴근본능’ 이었다고 해도 납득이 간다

물론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의 변화구에 어이없이 허를 찔린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배리 본즈가 월드 시리즈 내내 보여준 초인적인 집중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거짓말처럼 곧바로 운명이 바뀌었다.

삼진 하나가 달라질 운명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리 본즈의  인생을 다룬 베스트셀러 <러브 이, 헤이트 미>에서는 월드 시리즈 6차전이 열린 10월 26일을 ” 본즈를 증오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날” 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7차례 MVP에 통산 최다 652홈런, 여기에 단일 시즌 232볼넷과 고의 사구 120개는 배리 본즈의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다.

수많은 약쟁이 선수가 있다지만 어느 누구도 배리 본즈 수준에는 근접조차 하지 못했다.  굳이 정의 하자면 ‘ 약 신’이라고나 할까 숱한 대기록을 남기고도 옹호받을 수 없는 선수가 된 배리 본즈

그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 이었던 명예의 전당 입성마저 2022년초 최종투표에서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여전히 그를 평가하는 시선이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 그가 원하는 진정한 명예는 끝까지 얻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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